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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베터 이진희 대표 인터뷰

발견되는 장애, 발달장애
발달장애는 발달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속도로, 조금 다른 발달 궤적을 보이는 경우를 말해요. 즉 발달장애는 대부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 ‘발견되는’ 장애인 거죠. 뇌와 관련된 질병을 앓아서 발달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선천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다 보니 발달장애 인구는 어린 연령대에 집중되어 있어요. 20대의 62%, 10대는 70%를 넘어요. 30세 미만의 어린 장애 인구 대부분이 발달장애인입니다. 우리나라 장애 인구가 260만 명 정도 되는데 그중 9.2%에 해당해요. 이에 비해 지체 장애는 전체 장애의 50%가량 되는데, 선천적으로 지체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드물어졌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장애가 되는 중도 장애의 경우가 더 많은 거죠. 중도 장애의 경우 장년층과 노년층에 집중되어 있고요.
당연히 장애 유형에 따라서도 요구가 달라지는데, 거기에 연령대별로도 비중이 다르다 보니, 장애 정책의 포커스가 장애 유형에 따라 굉장히 달라집니다. 발달장애는 노동 시장으로 진입할 때 이슈가 클 것이고, 지체 장애는 장년층, 노년층을 어떻게 케어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되겠죠. 이처럼 구분해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현상을 파악해야 정확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장애 인구를 대상으로 문제를 파악하면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는 거죠.
그중에서도 발달장애를 ‘발견된다’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몇십 년 전에는 이런 것을 장애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동네마다 있을 법한 그런 존재로 농경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대가족 안에서 살아갈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이걸 장애라고 인식하게 된 거죠.
한 사회에서 장애라고 인지되는 사람들의 비율을 ‘장애 출현율’이라고 하는데, 이게 나라마다 큰 차이가 납니다. 핀란드는 30%가 넘어요. 한국은 5.4%라고 합니다. 네팔 같은 경우는 1.9%라고 해요. 그만큼 장애의 정의는 사회문화적 맥락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우리나라가 조금 다른 건 장애인을 등록해서 관리한다는 거예요. 장애 여부의 판단은 의사에 의해서, 의학적 기준으로 판별합니다. 우리나라는 의학적 기준으로 지체 장애의 경우, 사지의 어느 부분까지 절단되면 몇 급이라는 식으로 경증과 중증을 나눠요. 이처럼 의학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게 경계가 명확할 수는 있는데, 교육이나 고용에서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에서는 다를 수 있거든요. 급수나 경중에 따라 기계적으로 행정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를 심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이게 우리나라 장애 기준이 잘못됐다기보다는 정책을 집행하는 이들의 판단을 인정하고 신뢰해야만 작동하는 제도인데, 우리 사회의 현실은 사실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저 행정 기준에만 맞추는, 책임은 애매하고 결과는 아름답지 않은 그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거죠.
그런데 독일 같은 경우에는 이 사람이 도움이 없이는 직업을 갖기 어려운가? 라는 기준으로 중증과 경증을 나누고 있어서, 사회적 도움의 요소가 굉장히 구체적일 수 있는 거죠. 그런 걸 직업적 장애 판정이라고 얘기하는데 저는 그런 부분이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성인기 발달장애인의 자리
일단 특수 교육은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에요. 물론 그 내용을 더 들여다보면 힘든 것도 있고, 아직 미흡한 것도 많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의무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학교라는 영역에서 어떻게든 사회가 책임지게 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성인이 되면 그렇게 책임지는 조직, 공간이 없어지는 거예요. 물론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많이 나아졌어요. 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면 갈 곳이 없다고 처절하게 부르짖었던 게 10년 전이라면 지금은 아주 기본적인 건 마련이 됐다고 할까요.
보호 고용이든 의무고용이든 최근 10년간 발달장애인의 일자리가 수치로 많이 늘긴 했습니다. 이건 의무고용제도라는 굉장히 강력한 압박 수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신규 고용 가능한 장애인 중에 발달장애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의 압력이 높았을 거예요. 그래서 사회적인 노력이 그쪽으로 집중된 결과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여전히 문제는 고용의 질인 거죠.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의 비정규직 비중이 굉장히 높고, 그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은 비정규직 비중이 78% 정도 됩니다. 그리고 복지부에서 주관하는 돌봄과 결합한 일자리인 보호 고용은 최저 10만 원 정도의 급여를 주고 있는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30세 미만의 장애 인구의 65%가 발달장애인이니 앞으로 노동 시장으로 들어올 인구가 많은 만큼 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추가로 계속 필요할 거라는 거죠. 절대적으로 숫자를 늘리는 것, 그리고 질을 높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강동 그린나래 센터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터와 삶터로서의 보호작업장
제가 베어베터 사원들하고 일하다 보니까, 이분들이 어린 나이에도 성인병 위험도가 너무 높은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하고 건강하게 오래 일하기 위해서 ‘별별 생활 체육센터’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니 이 친구들이 정말 달라지더라고요. 이전에는 이분들이 우울감 같은 게 기저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면, 우선 정말 즐거워하고,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면서 자기 효능감, 자존감도 향상되고 의사소통도 늘어나고 사회성도 좋아지고, 좋은 점이 많더라고요. 이게 이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사내 복지 요소이자 중요한 삶의 조건이 된 거죠.
‘표준사업장’으로 구분되는 베어베터는 입사할 때 조건이 혼자 출퇴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업무지시를 이해할 정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해요. 그런데 이들보다 장애가 중한 강동 그린나래 센터 같은 ‘보호작업장’은 혼자서 출퇴근이 어려운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활동이 제한적이에요. 장애가 더 중할수록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보니 성인병 위험도도 더 높기 마련이에요. 제가 조사했던 걸 기억해보면 전 국민 19세 이상의 BMI 평균이 33.8%인데, 별별 센터에서 운동하는 저희 발달장애 직원은 4년간 평균이 41%예요. 그런데 이번에 강동에서 조사해보니 56%가 넘더라고요. 그만큼 장애가 중할수록 일상적으로 운동하는 공간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리고 강동 그린나래 센터는 ‘보호작업장’이다 보니 정원 30명 중에 3분의 1은 훈련생이고 나머지가 근로 장애인이에요. 그리고 이런 보호작업장의 경우 대체로 임가공을 하다 보니 업의 특성상 그렇게 많은 임금이 나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강동 그린나래 센터에서는 최소한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보호작업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동시에 건강관리도 함께 유지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그것을 만들어나갈 사람들이 변화하는 과정
뭔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결국 거기서 주인이 되어 이 일을 할 사람들이 변화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앞서 이야기한 목표를 바탕으로 공간 리모델링을 포함한 계획을 자폐인사랑협회에서 강동구청에 제출했고, 이 공간의 운영위탁 승인을 받게 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기존에 운영해오던 분들은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해서 초반에 적응하시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으셨어요. 낯설고, 어리둥절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눠가면서 차츰 새로운 나의 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셨고, 그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뭔가 하려고 하시면서 최종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것 같아요. 그분들이 하시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누가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이게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야 하는 거라서 앞으로는 그 부분이 훨씬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기존의 근무시간을 줄이고 체육활동이나 다른 프로그램을 더 늘려야 하다 보니 센터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업무부담이 전보다 커지긴 했어요. 사실 보호작업장은 기본적으로 별도 프로그램을 하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동안은 그냥 매출로만 평가를 받으니까, 매출 달성에만 메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런 새로운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려면 기관의 성과를 측정하는 데에서도 변화가 필요하고, 그래야 밸런스가 맞을 것 같아요.
새로운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
이번 프로젝트는 김정호 대표의 펀딩이 기본적으로 컸고, 협회에서도 캠패인을 통해 기부를 받으면서 부족한 것을 많이 채워서 공간을 변화시키는 일이 자금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수월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설계와 디자인에 참여해주신 분들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해 본인들의 의지를 담아 약간씩 희생을 해주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다른 데서도 이런 시도를 할 때 그런 사람들의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게 쉬울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좀 좋은 운이 좀 따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좋은 걸 하나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일을 꾸준히 지속하고 개선되어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특별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베어베터가 했던 일도 연계고용제도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서 발달장애인도 최저임금을 주는 일반고용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고, 잘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 거죠. 이런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고 변화가 확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거든요. 알게 모르게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걸 보여주는 거죠.
별별 체육관도 그런 역할을 하게 되길 바라요. 별별 모델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려면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어떤 구조를 만드는 게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게 공간을 확보하는 일과 운영비인데, 강동 그린나래 센터는 운이 좋게도 구립 건물이었고, 트레이너 인건비도 구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 운영을 위한 경제적인 기본 틀은 마련됐거든요. 다른 데서도 이게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이 두 가지만 잘 해결된다면 다른 데로의 확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해도 한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만으로 사회를 바꿀 수는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 영역에서 잘하다 보면 거기에 영향을 받는 조직이나 개인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또 어떤 시도를 하면서 조금씩 바뀌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
이러한 일을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려는 노력인 건데, 사회 안에서 ‘함께 산다’라는 게 꼭 살 맞대고 옆에 같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거 같아요. 장애 특성에 따라서 사회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장애가 있는 사람한테는 더 편안할 수도 있는 거고요.
예를 들어, 비장애인들은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헬스센터 찾아가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운동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많아요.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이들이 조금 다른 행동을 하는 것에서 다른 이용자들이 불편하다고 거절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그러한 일반적인 헬스센터가 장애인들에게도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일반적인 운동 기구는 사용법을 익히는 것부터가 어려울 수 있고요. 그래서 그들에게 맞게 고안된 환경에서, 그들을 잘 이해하는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하는 게 필요한 거죠.
일하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비장애인이 많은 조직에 발달장애인이 한두 명 들어가서 일할 때, 이 사람의 장애 특성을 이해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굉장히 좋겠죠. 하지만 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데 이 한두 명을 같이 데리고 일하는 건 굉장히 어려울 수 있고, 발달장애 근로자들도 쉽게 설명해주지도 않고 자기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일의 속도를 못 따라가고 그저 ‘일을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더 힘들겠죠.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환경을 조성해서 거기서 일을 하게 하고, 이 조직과 다른 조직이 거래하거나 공존하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거죠. 그게 지금 베어베터가 하는 연계고용 기반의 비즈니스이고요.
연계고용을 하면 기업의 직접 고용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있지만, 그렇진 않았어요. 그거 그럴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거죠. 저희와 연계고용 거래를 하던 회사들의 경우 저희 직원들이 일하는 걸 직접 옆에서 본 거잖아요. 매일 우리 직원들이 배송 오는 걸 경험하고, 회사 내에 카페에서 근무하는 것을 매일 보고요. 이들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어떤 조건 아래서는 잘 할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거고, 직접 고용도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거죠.
결국 발달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노출이 많이 되고 익숙해지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인식개선인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이들의 존재가 드러나게 하는 거죠. 발달장애인을 위한 여러 시설도 크게 하나를 만들기보다는 도시 곳곳에 여러 개가 흩어져있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행동반경이 넓지 않은 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도시 안에서 오가면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겠죠. 변화에도 그런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